셀틱 FC
1. 개요
셀틱 FC는 스코틀랜드의 프로 축구 구단으로서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 참가하고 있는 클럽이다. 영국 클럽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클럽,[3] 유럽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으며, 챔피언스 리그 최초로 빅 이어를 들어올린 구단이다.
레인저스 FC와의 올드펌 더비를 구축하고 있었으나, 레인저스가 구단주에게 통수 맞고 4부리그로 강등되면서 레인저스가 프리미어쉽으로 올라올 때까지 더비는 한동안 치뤄지지 않았다.[4] 레인저스가 2015-16 시즌 2부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2016-17 시즌부터는 다시 올드펌 더비가 치러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프로 축구 리그가 시작한 1890년 이래 통산 우승 횟수는 51회를 기록하고 있다. 54회 우승의 레인저스 FC에 이어 우승 횟수는 2위.
제법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이 팀에서 활약했는데, 한국의 축구 팬들에게는 나카무라 슌스케, 기성용, 차두리, 두웨이가 유명하지만 그 외에 일본의 미즈노 코키, 중국의 정즈도 여기서 뛰었던 적이 있다. 특히 기성용이 막 입단한 2009-10 시즌에는 미즈노와 정즈도 셀틱 선수였기 때문에 유럽 축구 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한·중·일 선수가 모두 뛰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2. 역사
아일랜드 대기근 여파로 옆 나라 스코틀랜드의 산업 중심도시 글래스고에 아일랜드 이주민이 늘어나고 이들이 사회 하층민을 형성하면서 문제가 야기되자, 아일랜드 출신인 윌프리드 수사가 이들을 구제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1887년 11월 6일 셀틱을 창단했다. 창단은 1887년에 했지만 엠블럼에는 창단 후 리그 참가 연도인 1888이 들어가 있다.
창단 당시에는 에딘버러에서 아일랜드계 클럽이자 아일랜드 사회에 기여하던 하이버니안 FC의 이름을 따서 글래스고 하이버니안이라고 하려고 했다. 아일랜드계 클럽으로 출발한 던디 유나이티드도 동일한 사례. 하지만 당시 축구협회에서 같은 이름의 클럽은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모색하다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동일한 뿌리인 켈트족의 이름을 따 셀틱Celtic이라고 정했다. 켈틱이 아니라 셀틱으로 정한 이유는 이름을 발음하기가 쉽게 변형시킨 것이라고 한다. 보스턴 셀틱스의 경우에도 셀틱의 선례를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셀틱의 창단 이유를 설명한 비디오
여담이지만 상기 3개 클럽 중 아일랜드 색채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은 셀틱 뿐이다. 물론 던디 유나이티드와 하이버니안 팬 중에도 가톨릭계 클럽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팬들이 있다.
레인저스 FC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콩라인 느낌이 강하다. 리그와 리그 컵[5] 우승 횟수가 레인저스에게 밀려 2번째로 많으며, 스코티시 컵은 셀틱이 근소하게 앞서고 있지만 최다 준우승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최다 준우승은 옵션에 아예 우승보다 준우승이 많다.
이는 전국 대회뿐 아니라 글래스고 지역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1888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글래스고 컵(Glasgow Cup)'에서,[6] 역시 레인저스 FC에게 우승 17회 차이로 최다 우승 클럽 타이틀을 넘겨 주고 있다. 여기서도 최다 준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셀틱의 유러피안컵 우승 20주년을 기념해 만든 다큐멘터리 (1987)
셀틱의 유러피안컵 우승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2)
1967년 유럽 최초의 트레블을 이룩할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셀틱은 조크 스타인 지휘 하에 지미 존스톤, 빌리 맥닐, 바비 머독, 스티비 찰머스, 존 클락, 존 휴즈, 토미 제멜, 바비 레녹스 등을 필두로 하여 참가한 5개 대회 전부를 우승하는 괴력을 발휘했는데, 1967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는 당시 카테나치오로 잘 나가던 엘레니오 에레라의 인테르를 공격 축구로 신나게 두들긴 끝에 2-1 승리를 하여 영국 최초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여담으로 당시 결승전에 뛴 11명의 선수 모두가 홈 구장 25 km 이내 반경에서 태어난 선수들이다.
지금까지도 리스본의 사자들이라고 불리며 유럽 축구의 레전설 중의 하나로 군림 중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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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구단 최초로 빅 이어의 주인이 된 셀틱.'''
참고로 현재의 빅 이어 트로피는 셀틱이 우승한 1966-67시즌부터 사용되었다. 오리지널 트로피#는 1966년을 마지막으로 레알 마드리드 CF에 영구 수여되었으며, 지금의 빅 이어 트로피 디자인으로 개량된게 1966-67시즌부터이다. 때문에 셀틱은 새로운 빅 이어의 초대 우승컵 주인이라는 영광을 가졌고, 유일한 챔스 우승이 첫 빅 이어 획득이라는 크나큰 행운을 거머쥐게되었다.
2.1. 2000년대
21세기 들어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국내 인지도는 잉글랜드의 EPL, 스페인의 라 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A같은 빅 리그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의 에레디비시보다도 낮았다. 때문에 셀틱의 인지도도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일부 축빠들이 스웨덴의 레전드 공격수 헨리크 라르손, 전 일본 국가대표 선수인 나카무라 슌스케와 중국의 두웨이의 전 소속 팀이었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던 수준이었다. [9] 2009년에 기성용, 2010년에 차두리가 이 구단에서 뛰게 되면서 국내 언론에서도 비로소 보도하면서 한동안 알려지기도 했다.
2.1.1. 2011-12 시즌
리그 우승을 일찌감치 차지한 시즌이 되었다. 라이벌 레인저스가 자본 문제로 승점을 10점이나 감점되었기 때문. 게다가 레인저스가 구단주의 탈세 삽질 이후 벌금 및 엄청난 양의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강제 정리당하고 4부 리그에 새로운 클럽을 만들어 계승하면서 당분간 셀틱이 우승 독주가 계속 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이전부터 논의되어 온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의 이전까지 다시 거론되었지만 만약 이전할 경우 3부 리그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상황에 온갖 견제가 있을 예정이라서 말이 많고 갈등도 많다. 셀틱이 나간다면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는 완전히 무너질 상황이기 때문이다.
리그 컵에선 킬마녹 FC에게 0-1로 허무하게 져 3년만의 우승에 실패하면서 리그와 FA 컵, 리그 컵 우승 트레블 목표도 좌절되었다. 당시 리그 7위이며, 140년이 넘는 긴 역사[10] 에도 리그 컵 준우승만 5번이 고작이던[11] 킬마녹과의 결승에서 셀틱의 압승이 예상되었으나 결과는 킬마녹의 사상 첫 리그 컵 우승 제물이 되었고, 킬마녹 선수들이 리그 컵 우승 트로피를 부여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고 남은 FA 컵 2연패로 더블 우승을 노렸으나 이마저도 4월 15일에 벌어진 4강전에서 하츠에게 1-2로 지면서 놓쳤다.
2.1.2. 2012-13 시즌
레인저스가 없어진 리그에서는 셀틱을 상대할 적수가 없었고, 리그 7라운드 던디 FC 원정에서 승리한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34라운드에서 인버네스 캘리도니언 시슬 FC를 홈에서 4-1로 승리하면서 리그 4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24승 7무 7패 승점 79점으로 2위 마더웰 FC보다 16점 앞섰다.
UEFA 챔피언스 리그 2차 예선에서 핀란드의 HJK 헬싱키를 1, 2차전 도합 4-1으로 승리했고, 3차 예선에서 스웨덴 헬싱보리 IF와 격돌하게 되었다. 1, 2차전 각각 2-0씩 도합 4-0으로 승리했고, 오랜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진출한다. 하지만 조 추첨 결과 G 조의 FC 바르셀로나, 벤피카,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 한 조에 속해있다.
1차전 홈 경기에서 벤피카와 0-0 무승부를 거뒀다.
2차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원정 경기에서는 1-2로 지고 있다가 상대 수비수 후안 마누엘 인사우랄데의 퇴장에 힘입어 3-2 역전승을 거뒀다.
3차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는 사마라스의 행운의 선제골로 앞서가다가 전반 종료 직전에 이니에스타에게 동점골을 내주었고, 후반 종료 직전에 조르디 알바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1-2로 패해 무승부만 거둬도 큰 수확인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4차전 바르셀로나와의 홈경기에서 '''1군 멤버를 전부 투입한 바르셀로나를 2-1로 승리'''하면서 조 2위로 올라섰고, 더불어 바르셀로나의 12경기 무패를 깨뜨렸다. 국내 중계 하이라이트, 해외 하이라이트
5차전 벤피카 원정에서 1-2로 패배했지만 6차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면서 승점 10점을 기록,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득점 없이 비긴 벤피카를 2점차로 밀어내고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은 유벤투스와 맞붙게 되었다.
16강 유벤투스와의 1차전 경기를 앞두고 레논 감독은 경기 하루전 인터뷰에서 셀틱을 얕보지 말라며 자신감을 내보였지만 홈에서 열린 유벤투스와 16강 1차전 경기에서 0-3으로 패배했다. 유벤투스의 전략적 우위에 눌렸다는 것이 중평. 그 외에도 커먼스를 제외한 공격진의 결정력이 심각하여 지안루이지 부폰이 졸다가도 막는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였다. 그리고 2차전 원정에서도 0-2로 패하면서 16강으로 만족해야 했다.
2.1.3.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리그 우승자격으로 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에서 북아일랜드의 클리프턴빌 FC를 상대로 1차전 원정에서 3-0으로 승리했고, 2차전 홈에서 2-0으로 이기면서 도합 5-0으로 3차 예선에 진출했다.
3차예선에서 스웨덴의 IF 엘프스보리를 상대로 1차전 홈에서 1-0 승, 2차전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카자흐스탄의 FC 샤흐테르 카라간디과 맞붙었다. 압승이 기대되었지만 원정에서 0-2으로 패하면서 이변을 낳았다. 하지만 2차전 홈에서 후반전 시작 이후 2골을 연달아 만들어냈고, 종료 직전에 제임스 포레스트의 결승골로 3-0으로 이기면서 골득실에 앞서 본선에 진출했다.
조 추첨 결과 작년에 이어 또 맞붙은 FC 바르셀로나,그리고 AC 밀란,AFC 아약스와 함께 죽음의 조인 H조에 속했다. 공교롭게도 4팀 모두 역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둔 팀끼리 조가 이뤄졌다.
3라운드 아약스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승리를 한 것 빼고는 모두 패하면서 1승 5패로 조꼴찌로 탈락했다.
리그에선 31승 6무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승점 99점으로 2위 마더웰과 29점이나 차이났다. 이 중 1패는 25라운드에서 3위 애버딘 FC 원정경기에게 1-2로 패배한 것이다.
스코티시컵 8강에서는 애버딘에게 1-2로 패해 탈락했고, 리그컵에서는 16강전에서 맞붙은 3부리그 소속의 그린녹 모튼과의 홈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간 끝에 0-1로 패하면서 탈락해 왕조라고 하기에는 좀 쑥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1.4. 2014-15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리그 우승 자격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에서 아이슬란드의 KR 레이캬비크에게 도합 5-0으로 승리했고, 3차 예선에서 폴란드의 레기아 바르샤바와의 1차전 원정경기에서 1-4로 대패했으나, 2차전 홈에서 3-0으로 승리,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본선 진출을 앞둔 플레이오프에서 슬로베니아의 NK 마리보르를 만났다. 1차전 원정에서 1-1로 비겼으나 홈에서 0-1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마리보르가 슬로베니아 독립 이후 최다 리그 우승(12번 리그 우승) 및 2010년부터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거두던 슬로베니아 리그를 대표하는 챔피언이었지만 이를 감안해도 셀틱이 더 우위로 평가되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함에 따라 유로파 리그 본선에 진출했다. 레드불 잘츠부르크, 디나모 자그레브, FC 아스트라 지우르지우와 함께 D조에 속했다.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일찌감치 32강행을 확정지었고, 남은 2위 자리를 두고 디나모 자그레브와 경쟁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디나모 자그레브에게 3-4로 졌지만 2승 2무 2패로 가까스로 조 2위로 32강에 진출했다.
32강에서 인테르를 상대로 홈에서 3-3으로 비기고 원정에서 0-1로 패하면서 32강에서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29승 5무 4패로 2위 애버딘과 승점 17점차로 우승했다.
스코티시컵에서는 준결승에서 리그 3위를 거둔 인버네스에게 연장전 끝에 2-3으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리그컵은 4강전에서 라이벌 레인저스를 2-0으로 승리했고, 결승에서 던디 유나이티드를 2-0으로 이기고 6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더블 우승을 이룩했다.
2.1.5. 2015-16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리그 우승 자격으로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에서 아이슬란드의 스탸르난을 만났고, 1차전 홈에서 2-0 승, 2차전 원정에서 4-1로 승리함으로써 도합 6-1로 3차 예선에 진출했다.
3차 예선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라바흐 FK을 만났고, 1차전 홈에서 1-0승, 2차전 원정에서 0-0로 비겼고 도합 1-0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스웨덴의 말뫼 FF를 상대로 1차전 홈에서 3-2로 이겼으나 2차전 원정에서 데드릭 보야타의 자책골 등으로 0-2로 패하면서 도합 3-4로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함에 따라 유로파 리그 본선에 진출했고, 페네르바흐체 SK, AFC 아약스, 몰데 FK와 함께 A조에 속했다.
그러나 단 1경기도 이기지 못했고, 5차전에서 조 꼴찌로 탈락이 확정됐다. 최종 성적은 3무 3패.
스코티시컵은 4강까지 진출했으나, 4강전에서 라이벌 레인저스를 상대로 연장전까지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승부차기에서 7번째 키커 톰 로기치의 실축으로 4-5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결승에 진출한 레인저스는 하이버니언에게 2-3로 패해 준우승했다.
리그컵에서 4강까지 진출했으나, 4강전 로스 카운티 원정에서 시작하자마자 게리 맥케이 스티븐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나갔으나, 이후 3골을 실점하면서 1-3으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2.1.6. 2016-17 시즌
이번 시즌부터 브렌던 로저스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리그 우승 자격으로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에서 지브롤터의 링컨 레드 임프스 FC를 만났다. 1차전 원정에서 0-1로 패했지만, 2차전 홈에서 3-0으로 승리하면서 도합 3-1로 3차 예선에 진출했다.
3차 예선에서 카자흐스탄의 FC 아스타나를 만났다. 1차전 원정에서 1-1로 비겼고, 2차전 홈에서 후반 종료 직전에 무사 뎀벨레의 결승골로 2-1로 승리하면서 도합 3-2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플레이오프에서 이스라엘의 하포엘 베르셰바 FC를 만났다. 1차전 홈에서 5-2로 승리했고, 2차전 원정에서 0-2로 패하면서 도합 5-4로 3년만에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조추첨에서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다.
9월 14일 챔피언스리그 1차전 바르셀로나 원정경기에서 경기 내내 메시와 수아레스, 네이마르의 MSN 라인에 탈탈 털리면서 0-7로 대패했다.
2차전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3-3으로 비겼으나, 3차전 묀헨글라트바흐 원정에서 0-2로 패하면서 조 꼴찌로 내려앉았다.
4차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비겼고, 5차전 바르셀로나와의 홈경기에서 0-2로 패하면서 탈락을 확정지었다.
6차전 결과에 따라 유로파 리그 32강 티켓이라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 임했고, 전반 4분만에 패트릭 로버츠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앞서갔으나, 불과 4분만에 켈레치 이헤아나초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1-1로 비겼다. 같은 시각 바르셀로나에게 0-4로 대패한 묀헨글라트바흐의 3위 자리를 뺏지 못하면서 조 꼴찌로 탈락했다. 최종 성적은 3무 3패.
하지만 국내 대회에서는 대회 3개를 모두 석권하는데 성공했다. 리그에서는 30라운드까지 28승 2무라는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며 무려 8경기나 남은 상태에서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남은 8경기에서도 무패 행진을 하면서 최종 결과 34승 4무, 득실차 +81(106득점 25실점)에 승점 106점이라는 성적으로 1898-99 시즌 레인저스 이후로 118년만에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나오는 무패 우승을 달성하였다. 2위 애버딘 FC와의 승점차는 30점이나 났다.
스코티시 리그 컵에서도 결승전에서 애버딘을 3-0으로 누르며 우승하며 클럽 통산 100번째 실버웨어를 획득하였다.
스코티시컵 결승에서 애버딘을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3관왕과 더불어 자국 무대 47경기 무패'''로 시즌을 마감한다.
2.1.7. 2017-18 시즌
유럽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국내에서는 '''스코틀랜드 축구클럽 연속 무패기록 경신'''을 했다. 100년 묵은 62경기 무패기록을 깨고 2017년 11월 4일 세인트 존스턴을 상대로 63경기 연속 무패를 달성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2.1.8. 2018-19 시즌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3. 선수
3.1. 명단
3.2. 유명 선수
- 스코틀랜드
- UEFA
- 토니 모브레이: 1991-1995
- 피에르 판 호이동크: 1995-1997
- 파올로 디 카니오: 1996-1997
- 헨릭 라르손: 1997-2004
- 스틸리얀 페트로프: 1999-2006
- 닐 레넌: 2000-2007
- 에이든 맥기디: 2004-2010
- 로이 킨: 2005-2006
- 아르투르 보루치: 2005-2010
- 얀 페네호르오프헤셀링크: 2006-2009
- 로비 킨: 2010
- 프레드리크 융베리: 2011
- 요르기오스 사마라스: 2008-2014
- 프레이저 포스터: 2010-2014, 2019-
- 버질 판데이크: 2013-2015
- CONMEBOL
- 주니뉴 파울리스타: 2004-2005
4. 한국과의 관계
2009년 겨울 기성용이 진출한 뒤 2010 FIFA 월드컵 이후 차두리가 영입되면서 한국에서 유명세를 탔으며, 당시 SBS ESPN에서 셀틱 경기를 생중계할 정도로 인기도가 높았다. 이후 기성용과 차두리가 좋은 활약을 펼치며 2011-12 시즌 당시 레인저스 FC가 지배하고 있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고, 과거 PSV 아인트호벤에서 맹활약했던 박지성과 이영표 듀오에 버금가는 활약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여담으로 기성용과 차두리의 스코틀랜드 진출에 관여한 닐 레논은 2014 FIFA 월드컵 이후 사령탑을 찾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구애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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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셀틱서포터즈클럽(Seoul CSC)이 존재한다.
5. 기타
대표적인 응원가에는 셀틱 심포니(Celtic Symphony)가 있다. 아일랜드 이주민을 구제하고 스코틀랜드 사회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셀틱 FC에게 전설적인 레벨 송 밴드 울프 톤즈가 1987년 클럽 100주년 기념하여 헌정한 곡.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한 셀틱 팬 선원이 악마를 만나서 전 세계 정글을 돌아다니면서 셀틱 파크로 악마가 들어오는 것만은 막는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흥겨운 노래이며 노래의 마지막에 "우! 아! IRA 만세!(Ooh Aah Up the RA!)"는 이 노래 덕택에 레벨 송과 아일랜드 저항 문화에서 거의 클리셰적인 문구로 자리잡았다. 자세한 설명의 블로그글
그리고 윌리 메일리(Willey Maley)라는 노래에서는, 전설적인 감독 윌리 메일리를 시작으로 셀틱 역사를 모두 읊어버리는(!) 상상초월의 내용도 펼쳐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아일랜드 노래, 아일랜드 발라드에 가지는 전형적인 이미지인 "기나긴 역사를 읊는 음유시인" 이미지에도 부합하는 셈.
선수단 경기장 입장 시 응원가가 You'll Never Walk Alone으로, 리버풀 FC와 같다. 그래서 양팀이 친선경기를 할때는 두 서포터즈 모두 이 노래를 같이 부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케니 달글리시 등 여러 레전드들이 셀틱과 리버풀에서 모두 활동하는등 양팀의 사이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다른 응원가인 <The Fields of Anfield Road>를 부르면 같은 노래인데도 분위기가 묘해진다. 리버풀 서포터즈들도 이 노래를 부르지만 리버풀의 리즈시절을 찬양하는 개사 버전인 반면, 셀틱에서는 원곡인 아일랜드 민요 <The Fields of Athenry> 로 부른다.
이 민요의 내용은 아일랜드 대기근 때 굶어죽어가는 자식을 보다 못한 남자가 높으신 분들의 창고를 털려다가 붙잡혀서 오스트레일리아로 귀양을 가게 되고, 떠나기 전날 아내가 마지막으로 감옥을 찾아와 만난다는 노래라서 반 영국 감정을 일으키기 딱 좋은 노래이다.
일부 셀틱 팬들은 이 노래의 후렴구에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주도한 정당인 Sinn Féin, IRA을 넣어 부르기도 한다. 셀틱의 기원이 아일랜드계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된 것.
가장 유명한 울트라스 그룹은 그린 브리게이드(Green Brigade)이다.
이러한 역사적 아일랜드 민족주의와의 관계 때문에 정치색이 강한 팀이다. 옛날부터 좌익 팬덤으로 이름이 높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 때 글라스고 거리의 이름 중 노예에 관련된 사람들 이름을 대체하는 캠페인을 펼치는 그린 브리게이드
구글에 Celtics palestine이라고 검색해 보면 셀틱 팬들이 대규모로 팔레스타인 깃발들고 이스라엘 전쟁 반대 집회 등에 대규모로 참가하는 등의 사진이 많이 나오고, 독일의 좌파팀 장크트 파울리 울트라하고도 친하다.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당시에도 적지 않은 셀틱 팬들이 독립진영에서 팀 컬러 등을 입고 나섰다. 북아일랜드 분쟁이 심했을 때 셀틱과 레인저스 팬덤 사이 폭력, 유혈 사태는 그 본질은 인종, 종교 대립인 정치적 폭력에 가까웠다.
풋볼매니저에서는 본좌 선수 공급원이다. 현재는 수비수로는 크리스토페르 아예르, 미드필더로는 올리비에 은참, 공격수로는 오드손 에두아르가 있다.
6. 참고 링크
- The Celtic Wiki - 셀틱 관련 위키 중 문서량이 방대하다.
7. 같이 보기
[1] 영국 클럽 최초의 우승이다.[2] 이 골송 외에도 여러 개의 골송들을 쓰고 있다. 실제로 셀틱 팬들이 2017년부터 골을 넣을때마다 너무너무 많이 부른 Depeche Mode의 "I Just Can't Get Enough"이다. [3] 스코틀랜드 클럽중에서는 유일무이한 기록이다.[4] 리그가 아닌 컵 대회에서 만난 적은 있다.[5] 최다 준우승 기록을 갖고 있으며, 우승보다 준우승이 많다.[6] 현재는 각 클럽의 유스 팀 간의 대회로 진행되고 있다.[7] 당시 결승전 장소가 리스본의 에스타디우 나시오날(Estádio Nacional, 포르투갈 대표팀의 홈)이었다.[8] 유로파 리그의 전신[9] 이외에도 02-03 시즌 UEFA컵[8] 결승전에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포르투에게 패해 준우승을 하기도 했었고, 2006-07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홈에서 꺾고 16강을 확정지은 것도 국내에서 제법 유명했다.[10] 1869년에 창단되어 11~12 시즌 현재까지 스코틀랜드 1부 리그 구단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여담으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단으론 1853년에 창단되었던 에디픽스 시티가 있는데 이름을 바꾸고 재창단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5부 리그로 내려앉았다.[11] 리그 우승은 1965년 딱 1번 했다.[12] 2005년, 7살의 나이로 셀틱 유스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됐고, 2015년 4월, 던디 유나이티드 FC와의 리그 경기에 교체로 출전하며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게 되었다. [13] 이쪽은 안좋은 쪽으로 유명하다. 고작 1경기도 제대로 뛰지 못하고 쫓겨났기 때문(..) 보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고.